⊙ 김경미

흑앵/김경미

늘봄k 2019. 3. 20. 09:48

흑앵 / 김경미 

크고 대단한 존재가 될 듯한 하루이므로

화분에 물 준 것도 오늘의 운동이라 친다
먼 사바나 누 떼를 만지고 온 알래스카 형상의
흰 구름 떼도
오늘의 관광이라 친다
어지러운 머리카락을 조금 다듬었음은
오늘의 건축이라고 치고

오늘의 외출복은 오늘의 간접 화법
찻집 유리창 틀 먼지 한번 훅 분 것은
오늘의 자유
갑자기 쏟아지는 비는 오늘의 숙소

돌아보면

저 젖은 우산 냄새를 청춘이라고 치고 떠나왔음을
해마다 둥그런 필림통 한 겹씩 감았을 가로수들
거기 낱낱이 찍혔을 순간들
이제야 값지게 되찾으려 흑백의 나뭇잎들
치마처럼 들춰보는 추억은
오늘의 범죄라 친다
많이 되찾고도 여전히 산뜻해지지 않는 날씨는 
오늘의 감옥

노랑무늬붓꽃을 노랑 붓꽃이라 칠 수는 없어도

천남성을 별이라 칠 수는 없어도

오래 울고 난 눈을 검정 버찌라 칠 수는 없어도

스물두세 살의 젖은 우산을 종일 다시 펴보는
이 때늦은 그리움을
오늘의 위대함이라 치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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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 03月20日,水曜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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