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미

식사라는 일 / 김경미

늘봄k 2019. 4. 5. 19:08

식사라는 일 / 김경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456
밥의 입국 심사 시인 김경미
 
3부
식사라는 일 / 김경미

기러기 같은 입술
하루만 닿아도 은수저가 변한다 치약으로 닦아낸 
헝겊이 새까맣다
- 식사는 검은 침의 일

형광등처럼 새하얀 북극곰
너무 새하얘서 안 보일 지경인데
바다코끼리를 먹느라 가슴팍이며 다리까지 온통 
다 피 칠갑이다
- 식사는 피범벅의 일

치타의 눈 밑에는 검은 줄이 있다
사냥 때 햇빛의 방해를 막아준다
야구 선수들도 흉내 내는 그 검은 눈밑 차양
- 식사는 신의 일

개미는 기차와 설탕통을 좋아하는데도 허리가 잘
룩하다
나무들은 어떤 밥상에도 불려 다니지 않는다 앉아
서 잎만 벌리면 된다

그 모든 식사가 서로의 꼬리를 문 채
하늘로 날아오른다
기러기 떼처럼 거대한 입술 하나
구름을 먹으며 멀리 사라진다
- 식사는 소멸의 일


 

page 136~137

2019年 04月05日,金曜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