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생김새 / 김경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456 밥의 입국 심사 시인 김경미 3부 어둠의 생김새 / 김경미
모든 육체는 어둠을 주조한 것 어둠의 두께와 생김새가 그를 결정한다
어둠의 콧날이 두툼하면 분꽃은 나팔꽃이 되고 어둠의 목이 길어지면 뱀은 기린이 되는 것 팔을 잡아당긴 어둠은 주전자가 되고 어둠의 속을 파내면 신발이 된다
그러므로 목숨이란 어둠의 윤곽을 무너뜨리지 않 는 것 죽음이 윤곽을 열 때까지 몸은 끝내 제 몸 바깥에서의 풍찬 노숙 꽃잎들은 얇고 납작한 어둠의 부피로 더 얇은 바람을 이기니 어둠이 적을수록 형체를 얻지 못하는 법 그리하여 밤 밀물지기 전 석양을 사랑하듯 어둠의 숙명을 많이 아는 자일수록 나 사랑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