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경미

어둠의 생김새 / 김경미

늘봄k 2019. 4. 13. 12:55

어둠의 생김새 / 김경미 

   
   
문학과지성 시인선 456
밥의 입국 심사 시인 김경미
 
3부
어둠의 생김새 / 김경미


모든 육체는 어둠을 주조한 것
어둠의 두께와 생김새가 그를 결정한다 

어둠의 콧날이 두툼하면
분꽃은 나팔꽃이 되고
어둠의 목이 길어지면 뱀은 기린이 되는 것
팔을 잡아당긴 어둠은 주전자가 되고
어둠의 속을 파내면 신발이 된다

그러므로 목숨이란 어둠의 윤곽을 무너뜨리지 않
는 것
죽음이 윤곽을 열 때까지
몸은 끝내 제 몸 바깥에서의
풍찬 노숙
꽃잎들은 얇고 납작한 어둠의 부피로
더 얇은 바람을 이기니
어둠이 적을수록 형체를 얻지 못하는 법
그리하여 밤 밀물지기 전 석양을 사랑하듯
어둠의 숙명을 많이 아는 자일수록
나 사랑하는 것 

거울 속 저편의 어두운 나신(裸身)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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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 04月13日,土曜日

립스틱짙게 바르고 / 임주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