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희경
닿지 않은 이야기
늘봄k
2022. 1. 29. 16:16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오늘 아침 단어 시인 유희경
Ⅲ
부
닿지 않은 이야기 / 유희경
―L에게
달이 있더라니 구부러진 뒤에야 밝은 줄 알았다 귀
를 대고 한참 서 있었다 그저 아득하기만 한 그런 밤
이었다 누가 손등을 대고 까맣도록 칠해놓은 그런
앉았다가 떠난 자리를 꽃이라 부르고 많은 것을 보
여주고 싶었던 그래, 누가 흔들고 지나간 것들을 모
아 그늘이라고 부르기로 했다 그러니 꽃이 다 그늘일
수밖에
있었던 말들을 놓아주었더니 스르륵 눈이 감겼다
감고 싶었다 그랬다고 손목을 놓아주는 건 아니었을
텐데 스르륵 소리가 나고 눈을 감았다
그것도 소원이라고 휘청거리는 바람이 피었다 아무
리 잡아도 허공이었다 허공에 대고, 울어놓은 자리마
다 흔적이 생겼다 그 자리는 건들지 않았다 꺾을 힘
마저 놓아버렸다
page97 페이지
2019年5月22日.水曜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