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는 지도(地圖) / 유희경 저녁이 되면 스스로 사막이 되는 방법을 연구한다 더 빨리 늙기 위해 천천히 걷고 뒤로 걷다, 갑자기 돌 아서서 있으려 했던 사람을 떠올리는, 조금 시큰한 지도는 조금씩 자라는 동물 같은 것이다 봉투를 뜯 는 내 건조한 경력을 생각한다 아버지란 기호에선 캐 치볼이 떠오르지만, 어느새 나와 아버지 사이 넓게 자리 잡은 이만 헥 타르쯤의 운동장 이따금, 몰래 알약 반 개 같은 씨앗 을 심지만 자라는 것은, 없다 방금 불어온 바람을 등지고 어리고 슬픈 내가 공을 주우러 뛰어간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글러브는 누구 의 가죽이고 날아가는 것을 보면 왜 소리를 지르고 싶어지는가 계집애가 오빠를 쫓다 터뜨리는 울음을 빙그르르 돌리는 저녁이다 더는 돌릴 수 없을 때까지 숨을 참 는, 어쩌면 생활의 무늬란 그런 것이지 꼭 다문 입술 의 주름 같은 것 그러나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날리지 않는다 단단 하게 여물어 열리지 않는 길의 가슴을 열기 위해 새 빨간 태양이 넘어간다 잡기 위해 전력 질주하는 법 따위는 지운 지 오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