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희경

우산의 고향

늘봄k 2022. 1. 30. 07:51

문학과지성 시인선 393 오늘 아침 단어 시인 유희경

1 부
우산의 고향 / 유희경

창밖은 얇고 무서운 계절
사내들, 언어를 안고 걸어간다
빗속을 나는 새에 대해 들어본 적 없지만
방금, 공중을 지나는 것이 있었다

​꽉 쥔 주먹이 하얗게 돋는다 나는
빈자리마다 앉아 있다 그곳에도 나는 있고
놀란 표정이 잠든 얼굴들, 떠내려간다

​그것은 새였을지도 모른다
사내들 흘린 것을 줍기 위해 돌아서고
젖어가는 코르덴 바지는 슬프다

​우산은 그렇게 태어난다 우리는
젖은 채 태어나고 젖으려고 사는 것들
답 없는 질문처럼 꼭 그렇게

​지금의 우산의 색을 떠올릴 시간
얌전히 들어서는 어둡고 익숙한
곁에 머물고 이따금 스치던 손의 차가움,

​아무도 울지 않는 이런 날엔 또 모두가 울고
날아간 것은 새들의 아득한 꿈이었을지도
젖어가는 것은 속속들이 빗물이었을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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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年 04月25日(木曜日)

슬픈계절에 만나요 - 백영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