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건만 그는 오늘도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물론 아주 오래는 아니고. 아주 깊이도 아니고. 말하자면 지나치게 과장된 배우의 몸짓으로. 조금은 설익은 비평가의 말투로. 자, 모두들 각자의 헛된 계획들에서 내려와 여기 누워라. 죽음에 대해 말해주지, 그러고 나서 아아, 오늘은 너무 지치는군, 내일 계속할까? 그런 식으로. 잠시 침묵하는 사이 그의 피곤한 혀는 다른 노래의 음들을 다정하게 끌어안고 짧은 선잠 에 빠져든다. 전쟁이 끝난 지 한참이 지났건만 그는 오늘도 여행 중이다. 간지럽혀도 더 이상 간지럽지 않게 된 굳은 발바닥 으로. 선박이 아니라 기차로, 웨일스에서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카이로에서 팔레스타인으로, 촌충 같은 푸르름으로 갈래갈래 찢긴 허름한 먹구 름 아래서 그는 휴식을 취하며 생각한다. 모든 가난한 고장들을 공평하게 방문하기. 죽음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말기. 여행이란 가장 온순한 형태의 투쟁이다, 라고 그는 마른 강아지풀로 바람 한 방울을 찍어 어둠 위에 기록한다. 그는 열차의 창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꾸들꾸들한 밀반죽처럼 낯설게 변해가는 것을 바라 본다. 아아, 여기가 도대체 어디지? 수심에 가득 찬 표정이 유발하는 더한 수심 속에서 그는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 나의 유일한 독자여, 죽음에 대해 말해주지, 여기가 어디든 간에, 이제 그만 그 헛된 계획에서 내려와라. 이제 그만 그 위태로운 생명줄 위에 올라타라. 그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다시 한 번 자기 자신에게 말한다. 전쟁은 끝났다. 전쟁은 끝났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는 것이다. 나에게 주어질 배역은 더 이상 없는 것이다. 별똥들이 국숫가락처럼 허공을 긋는 밤하늘 아래서 그는 배고픔에 젖어 써 내려간다. "나는 어제 '금일 휴업'이 걸린 빵 가게 창문 앞에 오랫동안 서 있었다." 그는 식은 지 오래인 칡차를 홀짝이며 여러 나라를 전전했던 자신의 짧은 삶을 반추해본다. 그는 오랜만에 영국식 발음으로 '죽음'이라고 말해 본다. 아아, 얼마나 익숙하고 아늑한다. 사실은 태어나면서부터 그의 이름 속엔 죽음의 알파벳들 -d, e, a, t, h-이 군데군데 숨어 있었으니. 어찌 됐든 전쟁은 끝났다. 그는 눈물을 떨어뜨리며 좀 전에 썼던 문장을 급하게 지운다. 그리고 그는 지체 없이 자신의 머리에 대고 피스톨 의 방아쇠를 당긴다. 선박이 아니라 기차 안에서, 웨일스에서 스코틀랜드가 아니라 카이로에서 팔레스타인으로 가는 길 위에서, 그의 정수리에는 총탄 구멍이 뚫린다. 그렇게 전쟁은 끝났다. 이제 아무리 노력해도 그는 전쟁에 대한 두툼한 보고서를 완성하지 못할 것이다. 죽음에 대한 시 한 줄 쓸 수 없을 것이다. 심지어 그 비참한 진실에 대해서도 그는 더 이상 아무런 감흥을 느낄 수 없을 것이다. page 118~122 곰돌이 푸, 행복한 일은 매일 있어 [인생이라는 숲속에서 나를 잃지 않으려면] 상식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에게 휘둘리지 마세요.
☞ 세상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일을 '상식'이라는 한 마디로 정리할 수 있을까요? 그런 말을 습관적 으로 꺼내는 사람은 깊이 생각하지 않는 사람일 지 몰라요. 그러니 그에게 휘둘리지 말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