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손에 펜을 쥐고 "바로 이거다"라고 생각하는 스 케줄 표를 다 쓸 수 있고 그것만으로도 이미 이상적인 생활 방식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런 낙관적인 생각은 당장 버리는 것이 좋다. 실망과 환멸을 맛보더 라도 좌절하지 않을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즉 많 은 노력을 들였음에도 불구하고 돌아오는 것이 적어도 불만을 느끼지 않을 정도의 각오가 되어 있지 않다면 처음부터 하지 않는 편이 좋다. 다시 한 번 맥없이 누워 뭔가를 해야 하는데라는 생 각만 하면서 게으르게 잠을 자는 게 좋다. 당신이 말 한 것처럼 현재 당신은 매일 그렇게 하면서 살고 있을 테니까. 이렇게 말해 버리면 너무 노골적이어서 어쩐지 눈앞 이 캄캄해진 것처럼 생각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해야 할 가치가 있는 일을 하기 전에는 정신을 바짝 차리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나는 이러한 정신의 긴장 을 싫어하지 않는다. 난로 옆에서 졸고 있는 고양이와 나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고 생각한다. "싸음에 대비해서 정신을 긴장시켰다고 하자. 당신 의 답답한 충고도 주의 깊게 고려하고 이해했다고 하 자.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시작하면 되는가?" 당신은 이렇게 묻겠지만 단지 시작하기만 하면 된 다. 새삼스럽게 마법처럼 시작하는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풀장 끝에 서서 차가운 물 속으로 뛰어들려는 사람 이 "어떻게 뛰어들면 좋을까요?"라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냥 뛰어들면 됩니다. 정신을 바짝 차리고 뛰어드시오"라고 앞에서도 말한 것처럼 시간은 규칙적이고 일정하게 주어지는 것이다. 이 점에 관해서 특히 늘 고맙게 생 각하는 것은, 시간은 가불해서 낭비할 수가 없다는 사 실이다. 내년의 시간이나 내일의 시간, 지금부터 1시 간 후의 시간도 모두 고스란히 당신을 위해 남겨져 있 다. 당신이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시간을 낭비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던 것처럼 완전히 손도 안 댄 상태로 그대로 남겨져 있다. 이것은 대단히 기쁘고 기운을 북돋아 주는 사실이 다. 그러한 기분만 가질 수 있다면 언제라도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수가 있다. 때문에 다음주까지, 아니 내 일까지 기다리는 것조차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다. 다음주가 되면 물이 따뜻해지겠지 하고 생각할지 모르 겠지만 그렇지는 않다. 물은 더 차가워질 것이다.